초고령사회로 진입한 한국 사회는 노인의 삶의 질 향상과 자립적 생활을 지원하기 위한 주거 환경 개선이 절실하다. 이에 따라 고령자를 위한 주거 공간의 설계 기준이 점차 정교화되고 있으며, 국내 법규, 실제 적용된 표준 사례, 효과적인 공간배치 요소 등이 주요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본 글에서는 고령친화 주거 공간을 설계할 때 고려해야 할 국내 기준과 함께, 실제 사례와 공간 구조 측면에서의 편의성 요소를 살펴본다.
국내 법규 반영한 설계 기준
고령자, 장애인 등 이동 취약계층이 일상생활에서 불편함 없이 주거 공간을 이용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설계 기준을 제시
고령친화 설계를 위한 국내 기준은 「고령자ㆍ장애인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편의증진법)을 중심으로 마련되어 있다. 이 법률은 고령자, 장애인 등 이동 취약계층이 일상생활에서 불편함 없이 주거 공간을 이용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설계 기준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주 출입구에 경사로를 설치하거나, 문턱을 제거하는 등의 물리적 접근성을 확보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또한 국토교통부가 제시한 ‘고령자복지주택 설계 가이드라인’은 노인의 자립을 돕는 구조로 주거 공간을 재편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화장실 내 미끄럼 방지 바닥재, 손잡이 설치, 충분한 조도 확보 등이 핵심 항목이다. 특히, 혼자 거주하는 독거노인의 경우 긴급 상황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도록 비상 호출 버튼과 같은 안전장치 설치도 강조된다.
법적 기준 외에도 최근에는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이 자체적인 기준을 마련해 다양한 시범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시는 ‘고령자 맞춤형 임대주택’을 통해 최소 26㎡ 이상의 평면과, 낙상 방지를 위한 특수 소재 바닥을 도입한 사례를 보였다. 이처럼 국내 법규는 기본 뼈대를 제공하고, 실제 사업에서는 좀 더 세부적인 맞춤 설계가 이뤄지고 있다.
표준 사례를 통한 현실적 접근
고령친화 설계가 잘 적용된 국내외 사례를 살펴보면, 이론적 기준뿐 아니라 현실적 편의성과 심리적 안정감을 고려한 요소들이 발견된다.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은평 뉴타운 고령자 복지주택’은 대표적인 사례다. 이 주택은 바닥 단차를 최소화하고, 자동 개폐문, 손잡이 일체형 욕실 등을 도입해 고령자의 이동과 사용 편의성을 높였다. 또한 커뮤니티 공간을 함께 설계해 사회적 고립을 줄이도록 배려했다.
해외 사례 중에서는 일본의 ‘코레카라 하우징’이 주목할 만하다. 이곳은 철저한 바닥 평탄화 설계와 함께, 주방과 욕실에 수동 전환형 시스템을 도입해 사용자의 신체 조건에 따라 조절이 가능하도록 했다. 스웨덴의 실버타운 프로젝트는 치매 노인을 위한 동선 색상 구분, 창문 방향에 따른 생체 리듬 고려 조명 설계 등 심리·정서적 요소를 반영한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사례들은 고령자를 하나의 ‘수혜 대상’이 아닌, ‘사용자’로 인식하는 설계 철학이 바탕이 되어 있다. 실생활을 반영한 공간구성과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 설계는 고령친화적 삶의 질 향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공간 배치를 통한 편의성 확보 요소
고령자 주거 공간에서 가장 중요한 설계 포인트는 바로 동선의 단순화와 안전성이다. 전통적인 가정 구조에서는 계단, 좁은 복도, 높은 수납장 등이 고령자의 생활에 불편을 준다. 이에 따라 최근의 고령친화 주택은 단층 구조를 선호하며, 모든 생활 기능이 한 층 안에서 이뤄지도록 설계된다.
공간 배치 측면에서는 ‘이동 최소화’를 위한 구성 전략이 많이 활용된다. 예를 들어, 침실 옆에 욕실과 옷장이 함께 배치되어 아침 준비 동선을 최소화하고, 주방과 거실이 바로 연결돼 식사와 휴식의 흐름이 자연스럽도록 구성된다. 또한 실내 조명은 자연광을 최대한 활용하되, 저녁에는 간접 조명으로 눈의 피로를 줄이는 방식이 선호된다.
무엇보다도 고령자 주택에서는 ‘사고 예방’이 중요한 기준이다. 욕실과 주방에는 미끄럼 방지 마감재를 사용하고, 바닥 색상 대비를 줘 시각적 혼동을 줄이는 것이 도움이 된다. 또한 공간별로 손잡이 위치를 달리해 일어남, 이동, 앉기 등 신체 동작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것도 중요하다.
실내 공간이 지나치게 넓기보다는 필요한 기능에 집중된 컴팩트한 구조가 오히려 이동 부담을 줄이며, 심리적 안정감도 제공할 수 있다. 편의성과 안전을 모두 충족하기 위해서는 고령자의 생활 패턴을 철저히 분석한 공간 설계가 전제되어야 한다.
고령친화 설계는 단순한 배려 차원이 아니라, 노인의 자립성과 삶의 질을 좌우하는 핵심 인프라다. 국내 법규는 기본적 안전과 접근성을 확보해 주며, 표준 사례와 효과적인 공간 배치는 설계의 현실적 방향을 제시한다. 초고령화 사회로 향하는 지금, 보다 많은 주거 공간이 고령자 중심의 설계를 통해 변화해야 하며, 이는 개인과 사회 모두의 준비가 필요한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