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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라이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평론: 불편한 진실을 담은 현대인의 자화상

by think2904 2025. 9. 21.

안녕하세요! 오늘은 많은 분들이 이미 보셨을,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해요. 이 영화, 솔직히 한두 번 봐서는 그 깊이를 다 알기 어려운 것 같아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에 이어 아카데미 4관왕까지 휩쓸었을 때, 저도 정말 놀랐거든요. 그런데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니, 역시 봉준호 감독은 '봉테일'이라는 별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니구나 싶더라고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평론: 불편한 진실을 담은 현대인의 자화상
영화의 가장 기본적인 설정은 반지하에 사는  기택 가족 과 언덕 위 대저택에 사는  박 사장 가족 의 대비

 

1. 반지하와 대저택, 수직적인 공간이 말해주는 것

영화의 가장 기본적인 설정은 반지하에 사는 기택 가족과 언덕 위 대저택에 사는 박 사장 가족의 대비죠. 이 두 가족의 주거 공간은 단순히 사는 곳의 차이를 넘어섭니다. 기택네는 항상 햇빛이 부족하고, 창밖으로는 취객들이 소변을 보는 비위생적인 풍경이 펼쳐집니다. 반면, 박 사장네 집은 넓은 정원과 통유리창으로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죠.

봉 감독은 이 수직적인 공간을 통해 우리 사회의 계급 구조를 너무나 직관적으로 보여줍니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더 어둡고 습하며, 위로 올라갈수록 더 밝고 쾌적한 공간. 그리고 이 두 공간이 절대로 섞일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 바로 '폭우' 장면입니다. 박 사장네에게 폭우는 "운치" 있는 캠핑 취소 이유에 불과하지만, 기택네에게는 집을 휩쓸고 모든 것을 잃게 만드는 "재앙"이 됩니다. 같은 비를 맞는데,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요?

2. 냄새, 가장 비극적인 선을 넘는 감각

영화에서 가장 소름 돋는 포인트 중 하나는 바로 **'냄새'**입니다. 박 사장네 가족은 기택에게서 나는 '지하철 냄새'를 은연중에 언급하며 불쾌감을 드러냅니다. 이 냄새는 단순히 몸에서 나는 냄새가 아닙니다. 그들의 삶이 묻어난, 가난의 흔적이죠. 박 사장은 그 냄새를 혐오하며 경멸하듯 말하는데, 이 순간 기택이 느끼는 모멸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겁니다.

이게 정말 잔인한 점이에요. 아무리 기택 가족이 박 사장네를 속이고 그들 집안에 완벽하게 스며들었다고 해도, 냄새라는 보이지 않는 선은 결국 그들을 갈라놓습니다. '냄새'는 계급 차이를 드러내는 가장 비극적이고 사실적인 도구였던 거죠. 이 장면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마음이 불편해졌습니다. 과연 우리는 누군가의 냄새를 맡고, 그 사람을 판단한 적은 없는지 되돌아보게 되더라고요.

3. '계획이 없어서 실패할 일도 없다'는 말의 무게

영화 후반부, 기택이 이야기하는 **"계획이 없으니까 실패할 일도 없다"**는 대사는 아마 많은 분들께 강한 인상을 남겼을 겁니다. 처음 들으면 무책임하고 게으른 사람의 변명처럼 들리지만, 사실 이 말은 어떤 계획을 세워도 성공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을 담고 있습니다.

빈곤의 굴레에 갇힌 사람들에게 '노력하면 된다'는 말은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제자리거나 더 아래로 추락하는 현실 앞에서, 차라리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게 마음 편하다고 말하는 거죠. 이 대사를 듣고 나니, 저 역시도 **'계획'**이라는 단어가 가진 무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4. 결국, 누가 '기생충'인가?

봉준호 감독은 영화를 통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집니다. 과연 진짜 기생충은 누구일까요? 박 사장의 부에 기생하는 기택 가족일까요, 아니면 기택 가족의 노동과 삶에 기생하는 박 사장 가족일까요? 이 영화는 그 누구도 명확하게 '기생충'이라고 손가락질할 수 없게 만듭니다.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존재들이니까요.

<기생충>은 단순한 블랙코미디를 넘어, 우리 사회의 불편한 민낯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보고 난 후에도 한참 동안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드는, 정말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해요. 혹시 아직 못 보셨거나 다시 한번 보실 기회가 있다면, 이 글에서 이야기했던 부분들을 한번 떠올리며 감상해보시는 건 어떨까요?